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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범 2000.04.22 11:5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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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세부적인 한국의 교회역사를 써야겠습니다
그러면 한국교회는 어떤가요?
100년전에 토마스 선교사님이 복을 전하러 이곳에 와 순교당하시며 장로교가 출발했습니다.
그 당시 1%안되던 기독교인은 사회를 뒤집어 놓았고 3.1운동의 핵심세력을 이루었습니다. 모두 종교를 가진다면 기독교를 가지를 원했던 때가 이때이겠지요.
문제는 그 다음이었습니다.
3.1운동의 주동자인 33인의 배신이었습니다. 대부분이 기독교인이었던 그들이 변절을 한 것입니다.
거기다가 장로교 총회에서 억지로도 자의로든 신사참배, 우상에게 절해도 된다는 결의를 내고 그들이 직접 우상숭배하는 자리에서 실천을 하였다는 사실입니다.
일제가 끝나고 교회는 독립을 했으니 지금도 장로교는 그때를 정확히 짚어 반성하지 않습니다. 독립후 실세들도 그일에 동참했으니 당연한 일이겠죠. 여기서 파생된 결과는 뻔한 일이었습니다.
말씀과 생활과의 괴리현상입니다.
처음 복음을 받아들였던 이들의 그 태도는 찾아 보기가 힘든 지경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큰 부흥이 일어나 인구의 1/4이 기독교인이 되었지만 이런 생활 태도 때문에 내가 말세에 의인을 보겠는가라는 예수님의 탄식을 기억하게 합니다.
청년 때의 여러분들.
직장에 다니시는 분들
지금의 우리의 주변은 어떻죠.
이상과 현실, 원칙과 실제가 다른 세계에서 살고 있지 않나요.
극히 보수적이었던 저도 그런 시대를 살아왔습니다.
내가 무엇을 하리라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척박한 토양속에 아름다운 꽃이 피어나기는 힘듭니다.
그러나 몇명이 거름을 주고 노력을 다해야 그것이 가능합니다.
현실과 타협하지 마십시오.
그러나 현실을 거부하지는 마십시오.
이상을 실천해 보자구요. 성경대로 살면 이렇더라고 우리가 말해 보자구요. 우리를 필요로하고 내가 필요한 곳에 앞서
예수님이 나에게 요구하는 부분은 무엇인가?
그 예수님의 사랑의 심장을 가졌으면 무엇이나 자유입니다.
날마다 내가 주님의 심장을 가졌는가 확인하는 일이 더 필요하겠죠.
그러나
우리는 이런 위의 역사 줄기속에서 살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우리가 우리 자라온 가족환경을 애써 부정하려 해도 우리는 그 가정환경의 산물이며 영향을 받고 자라왔고 성격고 다분이 그 영향을 받고 있다는 것은 -
어려움은 우리의 흠이 되지 않지만
그 어려움을 어떻게 대처하는가는 우리의 책임이 될 것입니다.

이 때에 네가 만일 잠잠하여 말이 없으면 유다인은 다른 데로 말미암아 놓임과 구원을 얻으려니와 너와 네 아비 집은 멸망하리라 네가 왕후의 위를 얻은 것이 "이 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아느냐 (에스더 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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